박지원 국정원장은 굉장히 유머러스하다. 때문에 그와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비결이라고 할까. 그가 특히 자랑하는 대목이 있다. 전세계 임명직 고위공직자 가운데 최고령일 것이라고. 그는 42년생으로 올해 만 80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일을 한다. 지인이 그에 관해 재미 있는 일화를 단톡방에 올렸다. 박지원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글이어서 소개한다.
“그보다 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 봤냐? 난 4년 동안 직접 겪고 봤다. 월~금까지 매일 밤에 각계 각층 사람들(기자 포함)과 폭탄주 20잔씩 마시고도 다음 날 비서관보다 더 일찍 나온다. 너 할 수 있겠어?”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소 하던 말이다. 사람 잘 보기로 소문난 DJ가 박지원을 평가한 대목이다.
DJ에게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시계처럼 정확한 시간에, 그것도 조간을 쫙 훑어 DJ께서 무얼 물어도 답변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보고한다. 한 7~8년간. DJ가 "보고하지 말고 빨리 나가"라고 한 게 딱 한 번 있다던가. 너무 술냄새가 심하게 나서. 금귀월래(金歸月來)라는 말 알아? 지역구인 목포에 매주 금요일 밤 내려가요. 금~일 목포를 휩쓸고, 월요일에 국회에 귀환해. 대통령님 기일, 노벨상 수상 기념행사 있는 주간 빼고는 단 한번도 어김이 없어요. 이건 DJ께서 가르쳐주신 거고, 유지(遺志)와 같아서 꼭 지켰다고 한다.
동교동 1세대 비서관이 아닌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워낙 성실하게 잘 하시잖아. DJ가 박지원만 찾는데 어찌 하겠어? 왜 DJ가 동교동 1세대를 다 제치고 말년까지 박지원에 의지했을까? 정상회담은 왜 박지원에게 맡겼을까? DJ가 보통 분이신가? 우리가 모르고 대통령님만 아시는 또다른 엄청난 장점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
의리, 인간의 폭. 이것도 최고 수준이이라고 한다. 2015년 문재인-박지원 두 분이 치열하게 당권경쟁을 했다. 누가 봐도 박지원 사람인 ***가 문재인의 대변인 겸 언론특보단장을 했다. 전당대회 끝나고 패자인 박지원을 찾아뵈었을 때 "수고했어" 외에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안아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자. 상남자”라고 했다. 그 이후로도 고참 정치부 기자들(민추협 출입기자들) 식사모임이 매달 있는데, 그에 관해 내게 물으신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지원이 가장 오래 동안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점을 잘 알고 박 원장을 발탁했으리라고 본다. 박 원장이 최근 조선일보와 퇴임 인터뷰를 했다. 거기서도 재미 있는 구절을 보았다. “사퇴하면 어떻게 지낼 것인가”라는 물음에 “건강하고 왕성하게 활동할 것이다. 어린이날에 직원들 가족을 만났더니 TV조선 ‘강적들’ 얘기를 많이 하더라. 거기부터 나가서 마이크 권력을 장악하겠다(웃음).”라고 대답했다.
사실 국정원장들은 퇴임한 뒤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다. 그러나 박 원장은 역대 원장들과 다를 것으로 여긴다.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닐 터. 영원한 현역을 다짐하기에.
#오풍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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