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화요일 저녁이다. 우리 다섯 남매가 부부 동반으로 모여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원래 2박 3일 국내 여행을 하려다가 취소하고 점심으로 바꿨다. 대신 아주 근사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참석 대상은 10명인데 매제가 코스닥 상장 일로 바빠 함께 하지 못 했다. 모두 건강하기에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다. 고맙지 않을 수 없다.
형제간의 우애. 말은 쉽지만 지키기 어려운 게 또한 그것이다. 원수지간처럼 지내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럼 형제간에 왕래가 없다. 형제는 무엇인가. 어머니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이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형제도 출가하면 거리가 멀어진다. 우선 내 식구부터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형제보다 더 좋은 사이는 없다.
우리는 3남 2녀. 내 위로 누나 형이 있고, 밑으로 남동생 여동생이 있다. 나와 여동생은 서울서 살고, 누나는 평택, 형과 남동생은 세종서 산다. 서로 떨어져 살다보니 자주 만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형제는 1년에 최소 두 번은 만난다. 11월 17일(음력) 어머니 제사 때 세종 형님 댁에서 만나고, 12월 12일(음력) 아버지 제사 때는 충남 보령 선영에서 만난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한다.
남동생도 올해 환갑이다. 여동생은 59살. 오늘은 어릴 적 얘기가 오갔다. 맨 위 누님과 형이 동생들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덕에 우리 5남매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주위 사람들이 많이 부러워 한다. 물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우애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2008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지라고도 할 수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우리들에게 “우애를 지키라”고 당부하셨다. 그래서 바로 형제간에 계(契)도 만들었다.
우리는 자취를 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올라오면서 대전으로 전학을 갔다. 그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자취를 했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중학교 2학년 때 대전으로 왔다. 형이 동생들을 위해 가장 많이 애썼다. 지금도 자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평교사로 있다가 정년 퇴직했다. 남동생은 은행지점장을 몇 군데 거쳐 명예퇴직한 뒤 지난 달까지 2년간 더 근무를 했다.
나는 아직도 현직에 있긴 하다. 작은 회사 고문으로 일주일에 월, 수 이틀은 출근하고 있으니 말이다. 형과 동생은 세종에서 잘 지내고 있다. 둘다 대전 살다가 몇 년 전 세종으로 이사를 갔다. 형제도 가까운 거리에 살면 더 좋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형제 이상은 없다. 나이들수록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의지가 된다. 오늘도 그것을 느낀 하루였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75년 돌아가심)는 우리들이 잘 지내는 것을 보고 흐뭇해 하실 것 같다. 우리들에게 그런 성품을 물려주셨다. 다시 한 번 부모님을 생각한다. 다음 달에는 세종에 내려간다. 동생 회갑 기념 가족 모임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 제사 즈음해서 날을 잡을 것 같다. 각자 집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오늘 하루도 마감한다.
#오풍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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