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전 총리가 8일 별세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나도 고인과 특별한 추억이 있다. 90년대 말 고인의 집에서 2년 가량 아침 밥을 얻어 먹었다. 정치부 기자를 할 때다. 당시는 기자들이 마우리(집 방문)를 돌았다. 이 전 총리의 집은 염곡동에 있었다. 새벽 일찍 서울 당산동 집을 출발해 7시쯤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단골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갔던 것 같다. 사모님과는 특히 친했다. 사모님의 고향은 충남 청양. 대전여고를 나오셨다. 내 고향은 청양 이웃인 충남 보령. 사모님이 나를 보면 우리 고향 사람 왔다고 안방으로 데리고 가 따로 과일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아침도 아주 푸짐하게 나왔다. 찬도 10가지 이상. 지금도 그 시절을 잊지 못 하겠다.
오랫동안 다녀서 그랬던지 나에게 총리로 간다는 작은 특종을 주셨다. 이 전 총리는 굉장히 박식하셨다. 독서량이 상당해 다방면에 걸쳐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DJ는 생전에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두 사람을 꼽았다. JP와 이한동. 이 둘도 DJ 만큼이나 박학다식했다. 프로는 프로를 알아본다고. 이 전 총리는 내가 좋아하는 불광동 통나무집의 단골이기도 했다. 또 한 명의 거인이 가셨다. DJ JP 이한동에 필적할 만한 정치인이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내가 어제 이 전 총리의 부음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모두들 안타까워 했다. 그만큼 보폭이 컸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전 총리는 여야를 오가며 통큰 정치를 선보였다. 화합과 협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후배 정치인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 전 총리를 능가할 만한 원내대표는 나오지 않았다. 그가 거듭 평가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 전 총리는 입법·사법·행정 3부에서 화려한 관록을 쌓았다. 그는 특히 5공 전두환 군사정권부터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金) 시대'의 정치 격변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11대부터 내리 6선을 했고 내무장관, '당 3역'인 원내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 국회부의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요직을 섭렵했다. 관운도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율사 출신답게 정연한 논리를 구사하면서도 호탕한 성격의 호걸형으로, 친화력이 뛰어났다. 나에게도 살갑게 대해주셨다.
'단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통합의 정신을 강조하는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가 좌우명이다. 2018년 발간한 회고록 '정치는 중업(重業)이다'에서도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강조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맡았다. 대화와 타협을 존중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이한동 총무학'이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때문인지 여야 모두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집에 나 말고도 아침을 얻어 먹으러 온 사람이 항상 10~20명은 됐다. 인심도 넉넉했다는 뜻이다. 사모님이 더욱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오랜 간병으로 지치셨을 것도 같다. 정치 거목의 마지막 길에 칼럼으로 고별을 대신한다.
#오풍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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